[취재파일] 생계지원만큼 중요한 심리지원
'트라우마' 관점의 두 번째 인터뷰는 현재 전남 무안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돕고 있는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입니다. 심민영 센터장은 정신과 의사이자 국립병원 소속의 공무원으로, 국내 최초로 재난심리전담반을 조직했습니다. 그 후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로 확대·개편된 뒤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총괄하면서 재난심리지원 체계를 표준화했습니다. 산불과 코로나19, 대형 사고 등 재난 상황에서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해 생존자와 유족에게 260만 건의 상담을 제공하는 등 재난 트라우마 극복에 기여해 온 분입니다. 지난달 30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 밤 늦은 시각,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과 어렵게 전화가 연결됐습니다. Q. 오늘부터 현장에서 심리지원하고 계시다고요? 네 오늘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무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유가족분들이 공항 대합실 1, 2층에 꽉 차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공항에 머물면서 최대한 가까이서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발생하고, 많은 시신이 훼손된 상황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유가족분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또 시신을 막상 찾고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마음 아파하시는 상황이고요. 심리지원의 입장에서 다른 참사랑 다르게 이번에는 시신 확인 단계에서부터 심리지원 인력들이 같이 동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시신을 확인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그러다 보니 해야 될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 나중에 그것을 많이 아쉬워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급적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심리 지원 인력들이 첫 단계부터 동반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진행되고 나면 장례식장으로 유족분들은 가게 되실 예정이고요. 본격적인 심리지원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 보통 시작됩니다. 그래서 장례 전까지는 단계 단계 심리적으로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실질적인 도움, 옆에 있어드리고, 그야 말고 '심리적 응급처치'[1] 죠. 심리적 응급처지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일대일의 면밀한 애도 상담이나 심리 상담은 아무래도 장례가 끝나고 난 다음에 시작될 것 같아요. [1] '심리적 응급처치(Psychological First Aid, PFA)'는 트라우마나 위기 사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인도적, 지지적, 실질적 지원을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트라우마나 위기 사건 직후에 시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심리적 응급처치의 행동원칙은 보고(Look), 듣고(Listen), 연결(Link)하는 3L이며 물리적, 심리적 안전을 확인하고 공감을 바탕으로 시행한다. Q. 최근 소방 쪽에서 시신이 너무 훼손이 돼서 그 어떤 현장보다도 힘들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는데요. 여객기 사고가 다른 참사와 또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도 있을까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재난은 다 쉽지 않습니다. 아리셀 때는 화재로 인한 사망이었고 세월호 때는 익사였고 재난이라는 게 시신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 부분을 사실 유가족분들이 가장 힘들어하세요. 시신을 제대로 수습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부분만 수습이 되기도 하다 보니 우리 가족의 시신이 어디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슬픔이 있는 거죠. 이번 참사만의 특수성은 아닌 것 같아요. Q. 비상계엄 선포도 재난의 범주에 들어가나요? 법적으로 보면 비상계엄 선포가 재난의 유형에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쟁, 테러 등 이를 테면 무력적인 충돌과 관련된 것들은 재난에 포함되거든요. 이번에도 계엄군과의 충돌이 일어날 뻔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그럴 뻔했다고 받아들여지는 순간 (공포가 느껴지면서) 트라우마적인 속성을 갖게 됩니다. 더더군다나 이게 집단 트라우마의 요소가 있잖아요. 역사적으로 이미 그런 사례를 겪은 세대가 있고, 자녀 세대들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해왔기 대문에 저는 계엄과 관련된 트라우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의 내재돼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선포를 통해 다시 활성화됐기 때문에 상황은 되게 짧게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Q. 우리나라에서 재난 심리지원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공공영역에서 재난 심리지원을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입니다. 아시아나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착륙하다가 이탈한 사고 있었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저희가 재난 심리지원을 시작했습니다. 항공기 사고가 시작이었죠. 사상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당시 비행기 사고가 굉장히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가벼운 부상에 그치더라도 탑승객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참사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2013년 7월 7일 SBS 8뉴스&> Q. 당시 재난 심리 상담을 시작하게 됐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정신건강 전반에 걸친 변화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국립서울병원이 그전에는 만성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입원이 주된 기능이었어요. 당시 저희 기관 병상이 천 병상에 달했어요. 그런데 정신질환자들도 이제는 병원에 수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리 잡도록 재활 위주로 전환되면서 국립서울병원도 병상 수를 대폭 줄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럼 입원치료를 주로 담당하던 직원들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공공 정신건강영역에도 국립기관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거죠. 예를 들면 학교 폭력도 있고, 범죄 가해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공공사업이 동시에 시작이 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재난 심리 지원'이었습니다. 그 이전 2006년, 2007년부터도 행안부를 중심으로는 태풍 매미, 대구 지하철 사고 등 대형 참사 때 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관심을 받기는 시작했는데요. 그때는 구호의 일환이었고 전문성이 갖춰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립병원에서도 재난 심리 지원에 참여하자 해서 2013년에 팀이 생겼고요. 그 이듬해 세월호가 발생하면서 저희가 필요성을 짐작은 했지만 너무도 피부로 느끼게 된 거죠. 그때만 해도 7~8명의 작은 조직이었는데, '그것으로는 안된다. 상시적인 팀 조직이 있어야 되겠다' 깨닫게 됐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재난 정신과 관련된 연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계기로 복지부에서 R&&D 예산을 따서 세월호 유가족 코흐트(공통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 연구라든가 외국의 프로그램을 한국화 해서 들여와 교육프로그램과 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임시 TF', '위기지원단' 이러한 형태였다가 2018년에 법적인 준비 과정을 거치고 R&&D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정식으로 '국가트라우마센터'로 개소를 하게 된 거죠. 임시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기까지 세월호도 있었고, 메르스도 있었고, 강원산불도 있었고요. 그리고 국가 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는 재난은 전국 단위로 벌어지니까 한 군데에만 둘 게 아니라 적어도 권역 단위로는 있어야 되겠다 해서 권역 트라우마 센터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Q. 자연재해와 인재의 트라우마 차이가 있나요? 트라우마 사건의 유형에 따라 정신적인 영향의 정도는 분명히 달라요. 이를 테면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사건들, 더 폭력적인 속성이 있는 사건, 성적인 요소가 있는 사건들이 더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많이 가요. 자연재해보다는 인재가 정신적 후유증을 더 많이 남겨요. 트라우마의 회복에 있어 되게 중요한 것은 ' 수용'인데요. 이러한 사건이 나에게 벌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거를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인재는 어렵잖아요. 갈등도 더 많고,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기도 하고, 2차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발생하고, 회복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너무 많은 거예요. 상대적으로 자연 재난은 재산 손실이 되게 크고요. 인명 피해는 주로 사회재난에서 많이 난다고 하면, 재산 피해는 대부분 자연재난에서 나거든요. 특히 사회재난의 경우는 유가족들의 애도와 관련된 상담, 트라우마 관련된 상담에 더 초점을 두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20번 재난이 일어나는 나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Q. 최근 비상계엄 선포에 여객기 사고까지 이어지다 보니 우리 사회의 '집단트라우마'가 우려되는데요. 무엇을 우리가 유의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지난 10년의 통계를 봤을 때 한 해에 20번 재난이 나는 나라예요. 유형은 다 다르지만요. 그래서 저는 '트라우마 사건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는 동안 누구라도 겪을 수 있다, 특별히 불행하거나 너무 불운하거나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하고요. 다만 이러한 사건을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은 계속 해야겠죠. 하지만 100% 막을 수 없다면 이러한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복구하고 회복해 나가느냐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사건의 경우는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잖아요. 서로 도와야 합니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도와야 된다는 것은 일단 믿어야 되는 것이잖아요.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하고 서로 믿기 위해서는 투명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실 공적인 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되게 낮잖아요. 그런데 믿고 맡길 수 없고 불안하면 음모론에도 더 취약하게 되죠. 물론 공적 체계는 공적 체계대로 책임감을 갖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려는 헌신이 필요할 것이고요.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그런 공적 체계에 대한 신뢰와 지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짜 건설적으로 선순환이 되려면 그러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2022년 기자들과 같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잖아요? 네, 너무 보람됐어요. 이번에 보니까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자체적으로 선행해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 참고하라고 보도자료 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이 달라졌다 생각했습니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이제 정말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SNS나 온라인상에서는 여전히 여객기 충돌하는 장면을 노출한다든지 탑승객 명단이 돌기도 하더라고요. 그것은 되게 해롭습니다. 재난 피해자의 인권 문제인데요. 과거에는 유족들에게 연락이 안 되고 연락처 파악이 잘 안 되다 보니 공익적인 목적으로 피해자의 개인 신상을 희생하면서까지 명단을 오픈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가족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것이죠. 어떤 식으로 말이 또 와전돼서 돌지 모르고 같은 가족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를 테면 노모한테는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식으로 본인들의 의사랑 반하게 노출되었을 때 굉장히 해가 될 수도 있고 이런 이슈는 전적으로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단의 공개도 그렇고 위패나 사진의 노출도 마찬가지고요. 절대로 일방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유가족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실제 유가족들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상황이) 일방적으로 알려졌을 때 되게 폭력적으로 받아들이세요. 저희가 상담을 했을 때도 보면 되게 분개하시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존자나 유족들이 '당장 내 심리치료는 필요치 않다, 우선순위가 아니다' 주장할 때 어떻게 설득하시는지 물었는데요. 심민영 센터장은 실제 재난 대응 과정은 그 자체가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고, 심적으로 압도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심리 지원은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실제 의료지원이나 생계지원만큼 회복을 위해서는 심리지원이 필수적이고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집단적 심리지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이정애 기자, (calee@sbs.co.kr) *SDF 다이어리는 SBS 보도본부 미래팀에서 작성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 주세요. →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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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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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5